꿀벌 균세화 (봉판 넣기, 약군 관리, 육아권)
오늘 벌통 앞에서 꽤 참담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장수말벌 수십 마리가 벌통 하나를 집중 공격하고 있었고, 입구 아래에는 꿀벌 사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문지기벌이라는 개념을 알고, 꿀벌 사회의 방어 체계를 꽤 신뢰했던 터라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꿀벌은 봉군(蜂群) 단위로 외부 위협을 막아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장수말벌 앞에서 그 체계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직접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양봉을 몇 년 하다 보면 벌통 입구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깁니다. 벌들이 그냥 바쁘게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입구 근처에서 유독 신중하게 움직이는 벌들이 있습니다. 이 벌들이 바로 문지기벌입니다. 들어오는 벌에게 다가가 냄새를 확인하고, 수상하면 공격하는 역할을 합니다.
꿀벌은 봉군 식별을 주로 페로몬(pheromone), 즉 화학적 신호에 의존합니다. 페로몬이란 같은 종의 개체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 물질로, 꿀벌에게는 사실상 신분증 역할을 합니다. 같은 봉군의 벌은 비슷한 봉군 냄새를 공유하고 있어 문지기벌이 금방 동료로 인식합니다. 반대로 다른 봉군에서 날아온 벌은 냄새가 달라 즉각 경계 대상이 됩니다.
이 냄새 식별 시스템은 도봉(盜蜂), 즉 다른 봉군의 벌이 먹이를 훔치러 침입하는 상황에 특히 효과적입니다. 도봉이란 세력이 약해진 벌통 주변에서 다른 봉군의 일벌들이 저장된 꿀을 빼앗으러 몰려드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도봉이 시작되면 벌통 입구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평소의 질서 있는 출입 대신 벌들이 서로 엉키거나 입구 주변을 이상하게 맴도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때 문지기벌은 상당히 잘 작동합니다. 저도 직접 겪어보니 도봉이 오래 지속되기 전에 입구 분위기만 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먼저 옵니다.
그런데 장수말벌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문지기벌이 봉군 내 방어의 첫 번째 선(線)이라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장수말벌처럼 크기와 힘 자체가 압도적인 외적에는 사실상 역부족입니다. 오늘처럼 수십 마리가 떼로 달려들면 문지기벌이 먼저 희생되고, 이어서 외역벌(外役蜂)까지 잃게 됩니다. 외역벌이란 외부에서 꽃꿀과 화분을 채집해 오는 일벌로, 봉군의 먹이 조달을 담당하는 핵심 인력입니다. 이들이 대거 희생되면 봉군 전체가 흔들립니다.
일반적으로 도봉을 예방하려면 벌통 입구를 좁히고, 사양액(飼養液)이 벌통 주변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양액이란 설탕물이나 꿀을 묽게 희석해 벌에게 보충 먹이로 주는 액체입니다. 냄새가 강해서 다른 봉군의 벌을 유인하기 쉽습니다. 저도 이 관리 수칙을 꽤 충실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장수말벌 앞에서는 이 예방법들이 거의 무력합니다. 장수말벌은 좁은 입구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벌통 자체를 씹어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입구가 아니라 벌통 측면에서 공격이 시작됐고, 꿀벌들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제가 보기에 꿀벌의 방어 본능은 정말 대단합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달려들고 또 달려듭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습니다.
장수말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가 실제로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방법 중 끈끈이에 생포한 말벌을 붙여두는 것은 제가 몇 차례 써보면서 나름 효과를 본 방식입니다. 앞전에 장수말벌이 39마리나 붙은 적도 있었습니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양봉장에서는 이만한 수동적 방어 수단이 달리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직접 잡거나 쫓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실적으로 24시간 벌통 앞을 지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출처: 농촌진흥청) 장수말벌의 집중 피해 시기는 주로 8~10월로, 이 시기에 특히 벌통 관리와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봉을 처음 배울 때는 벌통을 열어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제대로 된 관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래 하다 보니, 벌통을 열기 전에 입구를 먼저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내역벌(內役蜂)과 외역벌의 움직임만 봐도 봉군 상태를 상당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내역벌이란 벌통 안에서 육아, 청소, 먹이 가공 등을 담당하는 비교적 어린 일벌을 말합니다. 이들이 입구 쪽으로 지나치게 많이 몰려 있거나 흥분 상태를 보이면, 벌통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외역벌이 꽃가루를 달고 정상적으로 귀환하는지, 입구 주변을 맴도는 낯선 벌은 없는지도 중요한 체크 포인트입니다.
오늘 장수말벌 공격 이후, 살아남은 것은 내역벌과 여왕벌이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봉군이 다시 세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왕벌의 산란 능력과 남은 일벌 수에 달려 있습니다. 꿀벌 전문가들도 이런 피해를 입은 봉군은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양봉협회 자료에서도(출처: 한국양봉협회) 장수말벌 피해 후 봉군 회복에는 빠르면 수 주, 피해 규모에 따라 그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 계속 장수말벌이 찾아오는 벌통은 결국 분봉(分蜂)이 나거나 봉군 자체가 사멸할 수 있습니다. 분봉이란 봉군의 일부가 여왕벌과 함께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 새 군집을 형성하는 현상입니다. 이것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발생하면 양봉 관리 입장에서는 큰 손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해당 벌통 위치와 포획 장치를 다시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Q. 문지기벌은 어떻게 다른 봉군 벌을 구별하나요?
A. 주로 페로몬(화학적 신호)으로 구별합니다. 같은 봉군의 벌은 고유한 봉군 냄새를 공유하고 있어 문지기벌이 접촉하면 바로 동료로 인식합니다. 냄새가 다른 벌은 경계 대상이 되어 공격을 받거나 쫓겨납니다.
Q. 도봉이 시작됐을 때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벌통 입구 분위기가 평소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벌들이 서로 뒤엉키거나 입구 주변을 이상하게 배회하고, 전반적으로 소란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히 활동이 많은 날이라고 넘겼다가 나중에 도봉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 번 패턴을 익히고 나면 구분이 어렵지 않습니다.
Q. 장수말벌 공격을 받은 벌통, 그냥 둬도 회복이 되나요?
A. 피해 규모에 따라 다릅니다. 여왕벌과 내역벌이 충분히 살아 있다면 회복 가능성이 있지만, 외역벌을 대부분 잃은 상태에서는 먹이 조달이 어려워 봉군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추가 공격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면 사양액 보충으로 봉군을 지원해야 합니다.
Q. 장수말벌이 자꾸 같은 벌통을 공격하는 이유가 있나요?
A. 한 번 공격에 성공한 장수말벌이 경보 페로몬을 분비하면 동료 말벌을 더 불러들이는 효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첫 공격을 최대한 빨리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포한 말벌을 끈끈이에 붙여두면 페로몬이 끈끈이로 유인하여 벌통 피해를 줄이는 것을 제가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대응 방법 중 하나입니다.
문지기벌이 있어도 장수말벌은 막기 어렵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분명한 사실입니다. 꿀벌의 방어 체계가 뛰어나다는 건 맞지만, 그 한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사람이 그 한계를 인정하고 직접 개입하는 것입니다. 포획 장치를 미리 세팅해 두고, 피해가 발생한 벌통은 빠르게 점검하고, 봉군 회복을 도와주는 것. 벌이 스스로 다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장수말벌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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