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균세화 (봉판 넣기, 약군 관리, 육아권)
솔직히 저는 처음에 송전탑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습니다. 바위를 깨는 발파 소리가 골짜기를 울릴 때, 벌들이 소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양봉 농가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시작된 공사, 그리고 말이 계속 바뀌던 개발사 담당자들. 그 몇 년간의 경험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꿀벌이 집을 찾아 돌아오는 능력을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고 합니다. 꿀벌은 머리 부위에 자성 물질을 품고 있어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잡는데, 이 능력이 꽤 정교합니다. 그런데 고압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인위적인 전자기장은 이 지구 자기장을 왜곡시킵니다. 외역을 나간 벌이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집을 찾지 못하는 벌을 미아벌이라고 부릅니다. 미아벌이 대거 발생하면 봉군(蜂群), 즉 하나의 벌 집단 전체가 급격히 무너지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으로 이어집니다. 군집붕괴현상이란 외역을 나간 일벌들이 한꺼번에 귀환하지 못해 여왕벌과 어린 벌들만 남고 군세가 순식간에 와해되는 현상입니다. 제가 그 시기에 직접 목격한 것도 바로 이 상황이었습니다. 벌통 앞에 앉아 있다 보면 평소와 다르게 벌들이 무기력하게 소문 주변을 맴돌고, 외역 비행 자체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또 한 가지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꿀벌은 밀원지의 위치를 동료에게 알릴 때 8자 춤(Waggle dance)을 춥니다. 8자 춤이란 먹이 위치와 거리를 몸의 흔들림과 방향으로 동료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전자기장 교란이 심해지면 이 신호 자체가 부정확해져서, 밀원을 찾으러 나간 벌들이 허탕을 치는 일이 반복됩니다. 결국 채밀량(採蜜量), 즉 한 시즌에 거둬들이는 꿀의 양이 눈에 띄게 떨어지게 됩니다. 송전탑 이후에 풍력 발전기까지 들어온다면 저주파 소음이 추가되면서 여왕벌의 산란율까지 떨어질 게 뻔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꿀벌 전자기장 피해와 관련한 연구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동대학교 정철의 교수의 연구를 비롯해 농촌진흥청 농사로에서도 꿀벌 생태 보호와 관련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자기장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발파 작업이 시작되던 날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주변 건물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의 진동이 왔고, 그 순간 벌통들이 요동치며 벌들이 일제히 소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최대 168~172데시벨에 달하는 발파음이 발생할 때, 강군이라 해도 날개를 파르르 떠는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직접 확인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런 현상을 사천(死蜂) 피해라고 부릅니다. 사천이란 극심한 스트레스나 충격으로 벌들이 대량 폐사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시적인 탈출 이후 내부 육아 활동이 멈추면서 번데기와 유충이 죽고, 결국 봉군 전체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무밀기(無蜜期), 즉 꽃이 피지 않아 꿀을 모을 수 없는 시기에 이런 충격이 겹치면 농가 입장에서는 정말 속수무책입니다.
시공사 측은 측정 기준치 이하라며 피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꿀벌의 진동 감지 능력은 사람과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보다 훨씬 낮은 16데시벨의 지속적인 장비 소음에도 약군(弱群), 즉 세력이 약한 봉군은 이미 심하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법적 기준이 사람의 감각에 맞춰져 있다 보니 꿀벌 농가는 늘 이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소음과 진동 피해가 발생했을 때 농가가 바로 취해야 할 조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특히 마지막 항목은 제가 몸으로 배운 교훈입니다. 공무원이 있는 자리에서는 협상하겠다던 사람이 다음 주에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잡아떼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녹음 하나가 수개월의 협상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농가가 혼자 대기업 시공사나 공기업을 상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몇 농가가 함께 면사무소를 찾아갔을 때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도 담당자마다 말이 달랐고, 공무원들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몇 달씩 시간을 끄는 사이에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피해는 쌓여갔습니다.
개발 행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봉 농가의 피해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짚고 가야 합니다. 환경영향평가(環境影響評價)란 개발 사업이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하는 법적 절차인데, 이 평가서에 양봉 생태계 피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공사가 승인된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부 공식 사이트에서 해당 지역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열람할 수 있으므로, 공사 착공 전에 반드시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개발 소식이 돌자 벌통을 급하게 가져다 두고 보상 협상 자리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정작 오래 피해를 입어온 농가들의 신뢰도가 함께 떨어지고, 시공사 측에 빌미를 주게 됩니다. 협상 자리에 나갈 때는 공사 전후 봉군 소멸률, 채밀량 변화, 벌통 상태를 꼼꼼히 기록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가야 설득력이 생깁니다.
현금 보상 절차가 복잡하다면 물품 보상을 역으로 제안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저희도 결국 사양용 설탕과 양봉 부자재를 지원받는 형태로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공사 구간에 헛개나무 3,000주를 심는 것도 조건으로 받아냈습니다. 밀원수(蜜源樹), 즉 꿀벌이 꿀을 모을 수 있는 나무를 개발 구역 내에 심게 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봉장 환경을 회복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몇 달을 끌며 떠넘기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농가들이 지치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지침을 개발사 측이 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 증거가 희미해지고, 농가들이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지역 양봉협회 회장단과 함께 공동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개별 농가의 민원은 담당자 선에서 묻히기 쉽지만, 협회 명의로 도청, 산림청, 환경부에 동시 민원을 접수하면 처리 속도가 달라집니다. 법적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은 직접 법원에 제출하는 절차인 만큼 양봉협회 차원에서 법무사나 변호사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군의회와 협의해 지역 내 송전탑·풍력발전기 설치 관련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입니다. 개별 사안마다 싸우는 게 아니라, 제도 자체를 바꿔놓는 방향으로 가야 농가들이 반복적으로 소모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같이 면에 내려갔던 농가 모두가 공감했던 결론이었습니다.
Q. 송전탑이 꿀벌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가요?
A. 꿀벌이 머리 부위의 자성 물질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잡는다는 사실은 학계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고압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이 이를 교란한다는 연구도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피해 정도는 봉장과 송전탑 간의 거리, 선로 용량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공사 전후 데이터를 직접 기록해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Q. 공사 소음으로 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나요?
A. 영상 촬영과 일지 기록이 핵심입니다. 발파 시각, 벌들의 이상 행동, 외역 비행 감소 여부를 날짜별로 기록해 두면 보상 협의 자리에서 객관적인 근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군청 환경과에 공식 소음 측정을 요청해 공인된 수치를 확보하는 것도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Q. 보상 협의에서 현금 대신 물품으로 받아도 괜찮은가요?
A. 현금 보상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공사 측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양용 설탕, 벌통, 밀원수 식재 등 농가 운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품이나 사업으로 보상안을 요구하면 합의에 이르기 훨씬 수월합니다. 다만 합의 내용은 반드시 서면으로 남겨야 하고, 협의 자리는 녹음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Q. 풍력발전기와 송전탑 중 양봉 피해가 더 큰 쪽은 어느 쪽인가요?
A. 공사 단계에서는 발파 진동과 소음을 동반하는 송전탑 공사가 즉각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동 이후 장기적으로 보면 풍력발전기의 저주파 소음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해 여왕벌 산란율을 떨어뜨리고 봉군 세력을 서서히 약화시킵니다. 두 시설이 함께 들어올 경우 복합적인 피해가 발생하므로 초기 단계부터 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Q. 양봉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 농가도 공동 대응에 참여할 수 있나요?
A. 피해를 입은 농가라면 협회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공동 대책위원회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민원 접수나 법적 대응에서 협회 명의를 사용하려면 협의가 필요하므로, 가입을 검토해 보는 것이 실질적으로 유리합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개발 행위는 막을 수 없지만, 농가가 증거를 쥐고 연대했을 때만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항의하러 가면 담당자 한 명한테 막히지만, 데이터와 사람이 함께 움직이면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농가가 있다면, 일지 기록과 녹음부터 당장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 참고: 농촌진흥청 농사로 (https://www.nongsaro.go.kr) 환경부 (https://www.m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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