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균세화 (봉판 넣기, 약군 관리, 육아권)
오후 4시쯤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응애 방제에 내금까지 마치고 이제 좀 쉬나 했더니, 헛개나무 쪽에서 평소와 다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달려가 보니 벌들이 가지에 새까맣게 뭉쳐 있고, 장수말벌까지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두 벌통에서 자연분봉이 났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과 제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자연분봉(自然分蜂, natural swarming)이란 하나의 꿀벌 군집이 두 개 이상의 새로운 군집으로 나뉘는 집단 번식 행동입니다. 단순히 벌이 많아져서 밖으로 나가는 현상이 아니라, 꿀벌이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오래된 번식 방식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십중팔구 "벌이 도망갔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분봉이 일어나기 전에 벌통 안에서는 이미 준비가 한창 진행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신호가 왕대(王臺)입니다. 왕대란 일벌들이 새로운 여왕벌을 키우기 위해 만드는 특수한 방으로, 일반 육아방보다 훨씬 크고 도토리처럼 생겼습니다. 벌통을 열었을 때 왕대가 여러 개 보이고 그 안에 유충이 들어 있다면, 분봉 준비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다만 왕대가 하나 보인다고 무조건 분봉을 앞둔 것은 아닙니다. 왕 교체, 즉 기존 여왕벌을 교체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왕대도 있기 때문에 왕대의 위치와 숫자, 벌통 전체의 세력을 함께 봐야 합니다. 분봉 직전에는 여왕벌의 산란량이 줄고 벌통 주변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소란스러워집니다. 그날 아침에도 벌들이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빠서 그냥 지나쳤던 것이 후회로 남았습니다.
분봉 당일에는 수많은 일벌이 여왕벌과 함께 벌통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이 무리를 분봉군(分蜂群)이라고 합니다. 분봉군이란 기존 벌통을 떠나 새로운 집을 찾아 이동하는 꿀벌 무리 전체를 뜻합니다. 이들은 가까운 나뭇가지나 담장에 일시적으로 뭉쳐 덩어리를 만들고, 그 사이에 정찰벌이 새로운 집터를 탐색합니다. 적당한 장소가 결정되면 분봉군 전체가 그쪽으로 이동해 새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 벌통도 아니고 같은 날 두 벌통에서 분봉이 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헛개나무 쪽 소리가 심상치 않아 달려가 보니 가지에 벌 뭉치가 두 덩어리, 거기에 제가 소비장 한 장을 장대에 매달아 올려놓았더니 거기에도 벌들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가지에 매달린 뭉치 아래쪽, 바닥에 벌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 여왕벌이 있었습니다. 왕롱(王籠)에 넣었습니다. 왕롱이란 여왕벌을 임시로 가두어 이동하거나 관리할 때 쓰는 소형 케이지를 말합니다. 여왕벌을 왕롱에 넣어 나무에 매달아 두면 일벌들이 여왕벌 냄새를 따라 자연스럽게 뭉치게 됩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또 한 무더기가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잽싸게 달려가 보니 또 다른 여왕벌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여왕도 왕롱에 넣었습니다. 분봉군이 완전히 한 덩어리로 뭉치면 벌통에 옮겨 넣을 생각이었고, 일단 그 상태로 퇴근했습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벌들이 잘 뭉쳐 있으면 큰 걱정은 없습니다. 섣불리 손을 대는 것보다 하나로 완전히 뭉쳤을 때를 기다리는 편이 낫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가서 새 벌통에 옮겨 넣을 계획이었습니다. 분봉군을 포획할 때는 밖에 벌들이 많이 남아 있으면 그냥 두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와도 뭉쳐 있으면 버티니 걱정 마시고,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됐을 때 손을 대는 게 정석입니다.
그날 제가 한 일을 되짚어보면 이렇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방제 하나만 해도 벌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거기에 내금으로 벌통을 막고 먹이까지 한꺼번에 들어가면, 벌통 안의 온도와 환경이 한꺼번에 변합니다. 날씨까지 갑자기 더워졌으니, 벌들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의 자극이 한꺼번에 쏟아진 셈입니다.
바로아응애 방제만으로도 벌들이 충분히 흥분하고 예민해집니다. 몇 시간 텀을 두고 내금과 먹이 보충을 했더라면 달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벌통이 많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한꺼번에 처리하려 했던 게 결국 분봉을 앞당긴 것 같습니다. 그날 하루 마음이 조급했던 게 사실이고, 그 조급함이 후회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분봉이 이것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과학기술원의 자료에서도 설명하듯, 급격한 봉세 증가와 벌통 내 과밀화(過密化)는 자연분봉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입니다. 과밀화란 벌통 안에 벌이 너무 많아져 육아권의 공간이 부족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먹이 보충이 방아쇠 역할을 했더라도, 벌통이 이미 분봉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자연분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벌이 분봉을 마음먹기 전에 양봉가가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해보면서 가장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벌통 공간을 미리 넓혀주는 것, 강군을 주 1~2회 이상 꼼꼼히 살피는 것, 왕대가 보이면 즉시 대응하는 것입니다.
왕대를 제거했다고 분봉 본능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벌들은 왕대를 다시 만들기 때문에, 한 번 발견했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왕대 제거는 임시 조치일 뿐이고, 근본적으로는 벌통 안의 과밀을 해소해주어야 합니다. 빈 소비(巢脾)를 추가하거나 계상(繼箱)을 올려 벌이 쓸 수 있는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소비란 벌이 알을 낳고 꿀과 화분을 저장하는 육각형 방이 가득한 틀을 말하고, 계상이란 벌통 위에 올려 공간을 늘려주는 추가 통을 뜻합니다.
한편 분봉할 만큼 세력이 강해진 벌통이라면, 오히려 인공분봉(人工分蜂)을 먼저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인공분봉이란 양봉가가 직접 원하는 시기에 군집을 나누는 기술로, 벌이 도망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농가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봉군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도 강군 관리와 인공분봉 기술을 권장 관리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연분봉은 기존 여왕벌이 분봉군과 함께 떠나지만, 인공분봉은 양봉가가 여왕벌이나 왕대를 활용해 계획적으로 새 봉군을 구성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자연분봉과 인공분봉의 차이를 정리하면, 자연분봉은 벌이 결정하고 벌이 나가는 것이고, 인공분봉은 양봉가가 결정하고 양봉가가 나누는 것입니다. 분봉 관리의 핵심은 벌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는 데 있습니다.
Q. 자연분봉이 나면 원래 벌통은 망하는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분봉군이 떠난 뒤 원래 벌통에는 왕대와 많은 일벌, 봉개된 육아, 꿀과 화분이 남습니다. 새로운 여왕벌이 태어나 교미 비행을 마치고 산란을 시작하면, 기존 벌통은 새 여왕벌을 중심으로 다시 정상적인 군집을 이룹니다. 세력이 일시적으로 줄지만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Q. 분봉군을 포획할 때 왜 바로 손대지 않고 기다리는 건가요?
A. 분봉군이 완전히 한 덩어리로 뭉치기 전에는 여왕벌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벌들이 충분히 모인 뒤 여왕벌을 먼저 찾아 왕롱에 넣고, 그 왕롱을 새 벌통 안에 두면 나머지 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옵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서두르다 여왕을 놓치면 분봉군 전체를 잃기 쉽습니다. 비가 와도 뭉쳐 있으면 버티니,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Q. 왕대가 보이면 무조건 분봉이 임박한 건가요?
A. 왕대가 있다고 무조건 분봉을 앞둔 것은 아닙니다. 여왕벌 이상이나 왕 교체를 위해 만들어지는 왕대도 있기 때문에, 왕대의 위치·숫자·유충 상태와 벌통 전체 세력을 함께 봐야 합니다. 다만 왕대가 여러 개이고 그 안에 유충이 자라고 있다면 분봉 준비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봐야 하니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Q. 응애 방제와 먹이 보충을 같은 날 하면 정말 분봉에 영향을 주나요?
A. 제 경험상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아응애 방제만으로도 벌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같은 날 내금과 먹이 보충까지 겹치면 벌통 안 환경이 한꺼번에 바뀝니다. 거기에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 분봉 타이밍이 당겨질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방제 후 몇 시간 텀을 두고 나머지 관리를 하는 것이 벌에게도, 결과적으로 농가에도 낫습니다.
Q. 자연분봉과 인공분봉 중 어느 쪽이 양봉농가에 유리한가요?
A. 꿀 생산이 목적이라면 인공분봉이 유리합니다. 자연분봉은 기존 벌통의 일벌 수가 급격히 줄어 채밀 능력이 떨어지고, 분봉군을 놓치면 벌 자체를 잃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인공분봉은 양봉가가 원하는 시기에 계획적으로 봉군 수를 늘릴 수 있어 생산성 관리가 수월합니다. 다만 성공률을 높이려면 여왕벌 및 왕대 관리에 대한 숙련이 필요합니다.
분봉이 나고 나서야 그날 아침에 쏟아부은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방제, 내금, 먹이 보충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다 벌들을 너무 몰아붙인 것 같습니다. 벌통이 많을수록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 조급함이 결국 분봉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는 강군 벌통은 더 자주, 더 꼼꼼히 살피고, 방제와 먹이 보충은 하루를 나눠서 할 생각입니다. 자연분봉은 꿀벌에겐 번식이지만, 양봉가에겐 결국 벌의 신호를 제때 읽었는지 못 읽었는지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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