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균세화 (봉판 넣기, 약군 관리, 육아권)
처음 도봉(盜蜂)을 겪었을 때, 벌통 앞에 서 있는 제 발이 굳어버렸습니다. 입구에 사봉(死蜂)이 수북이 쌓이고, 벌 떼가 뒤엉켜 싸우는 소리는 전쟁터 그 자체였습니다. 7~8월 무밀기(無蜜期)가 되면 양봉 농가 대부분이 이 상황을 한 번쯤 경험합니다. 문제는 한번 터지면 내 농장만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밀기(無蜜期)란 자연 상태의 꿀샘식물(밀원식물) 개화가 끝나 꿀벌이 외부에서 꿀을 채집할 수 없는 시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대체로 7월 중순에서 8월 말 사이가 이 시기에 해당하고, 이때 벌통 안의 저장량이 줄어들면서 강한 봉군(蜂群)이 약한 봉군의 꿀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봉군이란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벌 무리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도봉의 시작은 거의 항상 냄새였습니다. 사양액(飼養液), 즉 꿀벌에게 공급하는 설탕물이 벌통 밖으로 조금이라도 흘러나오면 그 순간부터 주변 봉군의 정찰벌들이 달려듭니다. 특히 약군에 사양액을 직접 공급하면 그 달콤한 냄새가 약군 전체를 도봉의 표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제가 터득한 방법은 강군에서 이미 저장해둔 사양액꿀소비장(설탕물을 저장해 밀랍으로 봉한 소비)을 뽑아 약군에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공급하는 사양액 특유의 날카로운 냄새가 없으니 도봉 유인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세력 불균형도 구조적인 원인입니다. 강군 일벌들은 방어가 느슨한 약군의 소문(巢門), 즉 벌통 출입구를 뚫고 들어가 꿀을 빼앗습니다. 특히 초보 양봉가들이 밀납 조각이나 사용한 소비를 벌통 주변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주변 농장의 벌 전체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 농가들이 새로 생긴 초보 농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봉은 한번 불붙으면 진화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핵심은 두 가지, 냄새 관리와 봉군(蜂群) 세력의 균일화입니다.
사양액 공급 시간을 저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도봉 발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정찰 활동이 활발한 낮 시간에 설탕물 냄새가 퍼지면 그 즉시 외부 봉군의 탐색이 시작됩니다. 저녁에 소량을 공급하고, 1~2일 안에 소비할 수 있는 양만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급이관(給餌管), 즉 사양액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관 형태의 장치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연결 부위 누수를 수시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작은 틈 하나가 생각보다 넓은 범위로 냄새를 퍼뜨립니다.
봉군 세력 균일화는 조금 손이 가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강군에서 번데기가 든 소비를 꺼내 약군에 넣어주면 약군의 일벌 수가 보충되고 방어력이 높아집니다. 이때 강군의 여왕벌이 딸려가지 않도록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세력 균일화를 도봉 예방의 핵심 관리법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밀납과 사용한 소비 처리도 절대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밀납(蜜蠟)이란 벌집을 구성하는 왁스 성분으로, 꿀 향기를 오래 머금고 있습니다. 이를 야외에 방치하면 수백 미터 밖의 봉군까지 자극합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초보 농가에서 가장 많았고, 주변 농장에 피해가 번지는 가장 흔한 경로이기도 했습니다.
도봉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초기 대응이 전부입니다. 일반적으로 소문(巢門)을 좁히거나 벌통 입구 방향을 바꾸는 방법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제 경험상 그것만으로는 이미 달아오른 도봉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느낀 것은 고압 분사기를 이용한 물 분무였습니다. 한여름 뜨겁게 달아오른 벌통에 고압 분사기로 물을 뿌리면 왕왕거리던 벌들의 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습니다. 벌들이 물에 젖으면 비행 능력이 떨어지고 페로몬(pheromone)의 교란 효과도 생깁니다. 페로몬이란 꿀벌이 분비하는 화학 신호 물질로, 도봉 상황에서는 공격 페로몬이 주변 벌을 더욱 자극하는 역할을 합니다. 물 분무로 이 신호 전달을 끊어주는 것입니다. 분봉(分蜂), 즉 봉군의 일부가 여왕벌을 따라 떼로 이탈하는 상황에도 같은 방식을 써봤는데 진정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도봉을 당한 벌통을 즉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도봉 벌들은 위치 기억으로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찾아오기 때문에, 벌통을 치우고 빈 벌통을 대신 그 자리에 두면 도봉 벌들이 혼란을 겪어 접근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혼란을 주는 임시방편이지 근본 해결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인식하셔야 합니다.
벌통 검사 중 도봉 기미가 보이면 작업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다음 검사는 바로 옆 벌통이 아니라 대각선 방향으로 가장 먼 벌통부터 순서를 바꾸어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벌통을 여는 순서가 도봉 확산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통 검사 시간도 낮보다는 저녁 이후로 미루는 것이 이 시기에는 맞습니다. 농사로(농촌진흥청 농업기술포털)에서도 무밀기 관리 요령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 도봉이 시작된 벌통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됩니까?
A. 초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약군의 꿀이 모두 약탈당하고 여왕벌이 죽거나 유충이 파괴되는 사태로 이어집니다. 심한 경우 해당 봉군은 완전히 붕괴되고, 도봉이 인근 농장으로 번지면서 주변 피해까지 발생합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처럼 사봉만 남은 벌통을 보고 나면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Q. 약군에 사양액을 줄 때 도봉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A. 저는 강군에서 이미 저장된 사양액꿀소비장을 빼내어 약군에 넣어주는 방법을 씁니다. 새로 공급하는 사양액에서 나는 날카로운 냄새가 없어서 도봉 유인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그래도 사양액을 직접 공급해야 한다면 저녁 시간에 소량만 주고, 봉지사양법(비닐봉지에 사양액을 담아 공급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냄새 확산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습니다.
Q. 고압 분사기로 물을 뿌리면 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까?
A. 일시적인 자극은 있지만, 도봉 상황에서 방치하는 것이 봉군에 훨씬 큰 피해를 줍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을 때 물 분무 후 벌들이 벌통 안으로 빠르게 귀소하고 상황이 진정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냉수를 강하게 쏘지 말고 일반 수온의 물을 넓게 분무하는 방식이 적당합니다.
Q. 강군에서 소비를 뽑아 약군에 넣으면 강군이 약해지지 않습니까?
A. 번데기 소비를 1~2장 정도 이동하는 수준에서는 강군의 전체 세력에 큰 영향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력 균일화가 이루어지면 도봉 위험이 낮아져 농장 전체의 손실이 줄어듭니다. 다만 강군의 여왕벌이 함께 이동하지 않도록 반드시 확인 후 작업하시기 바랍니다.
Q. 도봉이 발생한 뒤 빈 벌통을 원래 자리에 놓으면 정말 효과가 있습니까?
A. 도봉 벌들이 잠시 혼란을 겪어 접근 빈도가 줄어드는 효과는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닙니다. 도봉을 당한 벌통을 다른 위치로 즉시 이동시키는 것이 먼저이고, 빈 벌통 배치는 그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무밀기가 오기 전에 한 번만 농장을 돌아보십시오. 밀납 조각이 벌통 주변에 굴러다니지는 않는지, 급이관에서 사양액이 새고 있지는 않은지, 강군과 약군의 세력 차이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이 세 가지만 점검해도 도봉 위험은 절반 이하로 줄어듭니다. 도봉은 한번 발생하면 내 농장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이웃 농가까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나서 가장 후회한 것도 결국 "미리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 참고: 농촌진흥청 (https://www.rda.go.kr) 농사로 농업기술포털 (https://www.nongsar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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