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벌꿀과 천연벌꿀 (신뢰도, 밀원부족, 표시기준)
늙은 벌이 벌통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벌통 입구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니 그 말이 꼭 맞지는 않더라고요. 책에서 배운 내용과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일벌이 태어나자마자 어떤 일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역할이 어떻게 바뀌는지, 제가 벌통을 직접 들여다보며 느낀 점과 연구 결과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일벌은 알에서 부화한 뒤 애벌레 시기를 거쳐 성충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먹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처음 3일은 여왕벌 후보와 마찬가지로 왕유(Royal Jelly)를 먹습니다. 왕유란 일벌의 인두샘(hypopharyngeal gland)에서 분비되는 고단백 물질로, 쉽게 말해 벌 세계의 고급 영양제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약 3일째부터 일벌 애벌레는 worker jelly라고 부르는 일벌용 먹이로 전환됩니다. 이 먹이는 왕유에 꽃가루와 꿀이 섞인 형태로, 여왕벌 후보에게 주어지는 왕유와는 성분 비율이 다릅니다. 같은 암컷 애벌레라도 어떤 먹이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받느냐에 따라 여왕벌과 일벌이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충(移蟲) 작업, 즉 애벌레를 왕대에 옮겨 여왕벌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면서 이 차이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3일째 애벌레보다 5일째 애벌레가 크기도 크고 작업하기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작은 차이인데 실제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달랐습니다. 성충이 된 일벌은 가장 먼저 자기가 나온 육각형 벌방(巢房)을 청소합니다. 소방이란 벌집을 이루는 육각형 단위 방을 말합니다. 갓 태어난 벌이 가만히 있지 않고 제 집부터 치우는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일벌의 역할 분담을 학술적으로는 시간적 다중역할(temporal polyethism)이라고 부릅니다. 나이에 따라 맡는 역할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인 순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다만 이 순서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벌통의 상황에 따라 앞당겨지거나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벌방 청소를 마친 어린 일벌은 육아에 참여합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인두샘(hypopharyngeal gland)이 왕성하게 발달합니다. 인두샘이란 일벌의 머리 안쪽에 있는 분비샘으로, 왕유를 포함한 애벌레용 먹이를 만들어내는 기관입니다. 어린 일벌이 직접 이 분비샘을 통해 애벌레에게 먹이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연구에서도 4~12일령 일벌에서 육아 관련 행동이 집중적으로 관찰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PubMed Central).
어린 벌들의 육아 활동을 보면서 제가 늘 체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벌통에 어린 일벌이 충분히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린 벌이 많다는 것은 여왕벌이 제대로 산란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육아권이 건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약해지면 벌통 전체의 세력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린 벌들의 역할은 육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외역벌이 꽃에서 가져온 꿀과 꽃가루는 벌통 안으로 들어온 뒤 여러 일벌을 거칩니다. 꿀은 단순히 벌방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수분을 날리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벌통 안에는 꽃에서 가져오는 벌, 받아주는 벌, 가공하는 벌, 저장하는 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마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분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공기 흐름을 만드는 환기 역할도 이 시기 일벌들이 담당합니다. 여름철 벌통 앞에서 일벌들이 줄지어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을 보면 작은 몸으로 에어컨과 환풍기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흔히 문지기 역할은 늙은 벌이 담당한다는 설명을 많이 봤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운 벌이 마지막으로 몸을 바쳐 벌통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꽤 설득력 있게 들려서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벌통 입구에서 한참 동안 문지기 역할을 하는 벌들을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벌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관찰이 단순한 착각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연구 결과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문지기 행동을 시작한 벌의 나이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평균적으로 약 14~16일령에서 문지기 역할이 시작되는 경향이 관찰됐고, 범위도 7~22일 사이로 넓게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 번 문지기를 맡은 벌이 며칠씩 그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출처: ScienceDirect).
따라서 문지기는 늙은 벌이 전담한다고 보기보다는, 내역봉에서 외역봉으로 전환하기 직전의 중간 연령대 벌에서 주로 나타나는 역할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내역봉이란 벌통 안에서 일하는 일벌을 뜻하고, 외역봉이란 밖으로 나가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는 일벌을 가리킵니다. 책에서 내역봉의 약 20%가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읽었는데, 현장에서 직접 살피니 그 구성이 단순히 나이 순서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가지 더, 벌통을 관찰하다가 갑자기 벌들이 사나워질 때가 있습니다. 일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생기면 경보 페로몬(alarm pheromone)이 퍼집니다. 경보 페로몬이란 위협을 감지한 일벌이 분비하는 화학 신호로, 주변 벌들을 즉각 방어 태세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는 있는 힘껏 몸을 부딪쳐 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조금 자리를 옮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조금만 이동해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날이 궂을 때도 벌들이 예민해지니 벌통 앞에서 통행을 막는 행동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나이가 든 일벌은 결국 외역벌(forager)로 전환됩니다. 외역벌이란 벌통 밖으로 나가 꿀과 꽃가루를 채집해오는 일벌을 말합니다. 이 역할은 일벌 생애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먼 꽃밭까지 날아가야 하고, 비나 바람을 만날 수도 있으며, 새나 말벌에게 잡힐 위험도 있습니다. 꿀벌의 사회적 구조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어린 일벌이 벌통 안에서 역할을 맡고 나이가 들수록 채집 활동으로 이동하는 연령 기반 역할 분담이 확인됩니다.
그런데 제가 벌을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일벌의 역할은 나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벌통에 외역벌이 갑자기 줄면 비교적 어린 벌이 일찍 채집에 나갑니다. 반대로 외역벌이 충분하면 내역봉 역할을 더 오래 유지하기도 합니다. 육아벌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다른 역할을 맡고 있던 벌이 육아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벌통의 세력, 계절, 먹이 상황, 외부 환경이 모두 맞물려 역할 전환 시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낮놀이라고 부르는 모습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낮에 벌통 앞에서 벌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인데, 이것은 내역봉이 처음으로 외부 비행을 연습하는 정위비행(orientation flight)으로 보입니다. 정위비행이란 벌이 처음으로 벌통 바깥을 기억하기 위해 주위를 맴돌며 위치를 익히는 비행을 말합니다. 책에서는 이 단어를 정위비행이라 하지만 현장에서는 낮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고 있으면 대충 무슨 상황인지 느낌이 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집 아저씨가 노제마병(Nosemosis) 예방에 매실청을 먹이에 섞어 준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은 따로 기록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노제마병이란 Vairimorpha apis 또는 Vairimorpha ceranae라는 미포자충류 병원체가 꿀벌의 소화기관을 침범하는 질병입니다. 오래 벌을 키우신 분들의 경험에는 분명히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바이오틱스나 천연물질을 이용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물질에 따라 효과 차이가 크고, 일부는 오히려 감염 상황에 좋지 않은 결과를 보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매실청에 대해서는 저는 아직 충분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아저씨 경험상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정도로 기록해 두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과는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일벌은 태어나면 바로 꿀을 모으러 나가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갓 태어난 일벌은 먼저 벌방 청소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육아, 먹이 저장, 환기, 문지기 순서로 역할이 이동하고, 나이가 든 뒤에야 외역벌로서 채집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다만 벌통에 외역벌이 부족하면 비교적 어린 벌이 일찍 채집에 나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Q. 문지기 역할은 정말 늙은 벌이 담당하나요?
A. 늙은 벌이 문지기를 한다는 설명을 많이 보셨을 텐데, 연구와 실제 관찰 결과를 보면 조금 다릅니다. 문지기 역할은 외역벌로 전환되기 직전의 중간 연령대, 평균 14~16일령 전후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저도 벌통 입구를 유심히 살피니 젊어 보이는 벌들이 문지기를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Q. 벌통을 보다가 갑자기 벌들이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일벌이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생기면 경보 페로몬이 퍼지면서 주변 벌들이 즉각 방어 태세로 바뀝니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올 때도 벌들이 예민해집니다. 이럴 때는 벌통 앞에서 서성이거나 통행을 막지 말고, 몇 걸음만 옮겨도 따라오지 않으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일벌의 역할은 나이로만 결정되나요?
A. 나이가 중요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벌통의 세력, 외역벌의 수, 육아량, 계절, 먹이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부족한 역할이 생기면 다른 연령대의 벌이 그 자리를 메우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조정됩니다. 벌통은 나이 순서대로 돌아가는 공장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살아있는 사회에 가깝습니다.
Q. 낮놀이는 뭔가요?
A. 낮 시간대에 벌통 앞에서 많은 벌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현장에서는 낮놀이라고 부릅니다. 학술적으로는 정위비행(orientation flight)에 해당하며, 내역봉이 처음으로 바깥 환경을 익히기 위해 벌통 주위를 맴도는 행동입니다. 책에서는 용어를 따로 정의하지만, 실제로 보면 대략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옵니다.
벌통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책에서 읽은 것과 눈앞에 보이는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일벌의 역할 분담은 교과서처럼 단계가 딱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벌통 전체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는 구조입니다. 청소부로 시작해서 육아사, 저장 담당, 문지기, 채집꾼까지 한 마리의 일벌이 살면서 역할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벌통을 보실 때 몇 마리나 있는가보다 어떤 벌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를 한 번 더 살펴보시면 벌통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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