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벌꿀과 천연벌꿀 (신뢰도, 밀원부족, 표시기준)
9월 7일, 최소 3매 착봉도 안 되는 벌통을 과감하게 털어냈습니다. 여왕벌이 멀쩡해도 버려야 할 벌통은 버려야 한다는 것, 저도 몇 번의 겨울을 통째로 날려보고 나서야 제대로 납득했습니다. 월동 준비는 10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어떤 벌통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일반적으로 여왕벌만 살아 있으면 봉군(蜂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봉군이란 여왕벌, 일벌, 수벌로 구성된 벌의 집단 전체를 뜻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생각으로 안 되는 벌통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겨울에 그대로 사라지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벌통도 이듬해 봄에 산란이 제대로 안 돼서 결국 폐기했습니다.
똑같이 시작했습니다. 먹이도 주었고, 여왕도 멀쩡합니다. 그런데 어떤 벌통은 세력을 키워나가고, 어떤 벌통은 처음 상태 그대로 밥만 축내고 있습니다. 봉충판(蜂蟲板)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것이 신호입니다. 봉충판이란 여왕벌이 산란한 알과 애벌레가 자라는 소비 한 장을 말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봉군 전체의 육아 능력과 세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왕의 산란 능력 하나만 보면 안 됩니다. 일벌 수, 먹이 저장 능력, 봉충판 형성 능력, 벌통 내부 환경, 질병과 해충의 영향까지 함께 작용합니다. 제 경험상 이 모든 요소가 맞아야 봉군이 제대로 커집니다. 여왕만 있다고 저절로 강군(强群)이 되지 않는다는 것,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번에는 착봉(着蜂), 즉 소비 한 장 한 장에 벌이 얼마나 붙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3매 이상 착봉이 안 되는 벌통, 봉충판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안 보이는 벌통은 과감하게 털었습니다. 특히 세력이 약해 도봉(盜蜂)이 붙거나 말벌이 계속 끄는 벌통은 소문을 오히려 열어버리고 정리했습니다. 도봉이란 다른 벌통의 벌들이 먹이를 빼앗으러 침입하는 현상으로, 세력이 약한 벌통에서 특히 자주 발생합니다.
소비(巢脾)는 벌들이 꿀과 화분을 저장하고 산란하는 육각형 집 구조가 만들어진 판을 말합니다. 정리한 소비가 멀쩡해 보여도 저는 그냥 불태워버립니다. 혹시 병균이 묻어 있을 수 있어서입니다. 소비 하나가 아깝기는 하지만, 그 소비 하나 때문에 멀쩡한 봉군까지 잃는 상황이 더 무섭습니다.
버리는 것을 결정했으면 다음은 남은 벌통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입니다. 제가 이번 월동 준비에서 세운 기준은 전체적으로 약 5매 착봉 수준의 안정적인 월동군(越冬群)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월동군이란 겨울을 넘길 수 있도록 충분한 세력과 먹이를 갖춘 봉군을 말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6~7매 착봉이 안정적으로 형성된 강군에서 봉판(蜂板) 1~2장을 빼내어, 3~4매 착봉된 약군에 넣어줍니다. 봉판이란 벌이 붙어 있는 소비 한 장을 뜻합니다. 강군에서 봉판을 꺼내 약군에 보태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약군을 무리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월동 가능한 수준으로만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만 합봉이나 봉판 이동을 할 때는 반드시 응애(진드기류 해충) 감염 상태와 질병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응애가 있는 봉판을 멀쩡한 봉군에 넣었다가 건강한 벌통까지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 가장 큰 실수입니다.
약군 10통보다 강군 1통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모두 끌고 갔다가 겨울에 통째로 잃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게 9월은 "늘리는 달"이 아니라 "고르는 달"입니다. 살릴 봉군과 정리할 봉군을 구분하고, 남은 자원을 강군에 집중해야 이듬해 봄에 제대로 된 출발이 가능합니다.
5매 착봉이라는 수치가 모든 농장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지역 기후, 벌 품종, 저장 먹이량, 월동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있는 농장에서 올해 세운 하나의 기준입니다.
벌통을 정리하는 날,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안동대학교에서 가시응애와 바로아응애 연구를 위해 봉판 20장을 구입하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아응애(Varroa destructor)는 꿀벌의 번데기와 성충에 기생하는 진드기로, 현재 전 세계 양봉업의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꿀벌 몸에 붙어 체액을 빨아먹고, 바이러스를 옮기는 기생 해충입니다. 농촌진흥청 농사로에 따르면 바로아응애는 국내 봉군 피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적절한 약제 처리와 지속적인 밀도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가시응애(Tropilaelaps spp.)는 바로아응애보다 증식 속도가 빠르고 산란 중인 봉아(蜂兒)에 집중적으로 기생합니다. 봉아란 아직 성충이 되지 않은 어린 벌, 즉 알과 애벌레 단계를 말합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가시응애의 서식 범위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시급성이 큽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도 응애류 방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벌을 키우는 입장에서 응애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화분과 사양액을 제대로 챙기고, 바로아응애 약제를 제때 투여하지 않으면 아무리 세력이 좋은 봉군도 무너집니다. 월동 전 응애 밀도를 낮추는 것이 사양(飼養)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사양이란 꿀벌에게 먹이를 보충해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대학 연구기관이 현장의 봉판을 직접 가져가 연구한다는 소식이 반갑습니다. 현장의 경험과 연구가 연결될수록 응애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꿀벌의 미래가 조금씩 더 밝아지기를 기대합니다.
Q. 9월에 착봉 3매 미만 벌통을 모두 정리해야 하나요?
A. 모든 농장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다만 월동을 앞두고 세력이 이 수준에 머무는 벌통은 먹이를 아무리 줘도 세력이 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벌통을 끝까지 붙들면 겨울을 못 넘기거나, 살아남아도 봄 산란이 제대로 안 됩니다. 지역 기후와 봉군 상태를 함께 보고 판단하되, 냉정하게 선을 긋는 것이 전체 봉군 관리에 유리합니다.
Q. 여왕벌이 살아 있는데 왜 봉군이 크지 않을까요?
A. 여왕벌의 산란 능력뿐만 아니라 일벌 수, 육아 능력, 질병과 응애 감염 여부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여왕만 멀쩡하면 봉군이 커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아응애나 질병으로 일벌 수가 줄어들면 여왕이 산란을 해도 애벌레를 키워낼 힘이 없어집니다.
Q. 정리한 소비를 다시 다른 벌통에 넣으면 안 되나요?
A.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세력이 약해진 벌통의 소비에는 병균이나 응애 알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찜찜해서 정리한 소비는 과감하게 태워버립니다. 소비 하나가 아깝더라도, 그것 때문에 건강한 봉군까지 잃는 것이 더 큰 손해입니다.
Q. 강군에서 봉판을 빼서 약군에 넣을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A. 반드시 두 봉군의 응애 감염 상태와 질병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응애가 있는 봉판을 멀쩡한 봉군에 넣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또한 여왕벌이 함께 이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봉군 간 거리와 이동 시기도 벌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율해야 합니다.
Q. 말벌 유인에 사용한 소비는 반드시 소각해야 하나요?
A. 네, 말벌 유인에 활용된 소비는 다시 벌통에 넣지 말고 소각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말벌이 다녀간 소비에는 외부 오염 위험이 있고, 말벌 페로몬이 남아 다른 벌통으로 피해가 번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정리할 소비라면 마지막으로 말벌 유인에 쓰고 깔끔하게 태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월동은 겨울에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점에 어떤 벌통을 남기고, 어떤 봉군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올 가을은 화분과 사양액을 꼼꼼히 챙기고, 바로아응애 관리에 집중하면서 남은 봉군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부디 남긴 봉군들이 내년 봄,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바랍니다.
--- 참고: 농촌진흥청 농사로 (https://www.nongsaro.go.kr) 국립축산과학원 (https://www.nia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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