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벌꿀과 천연벌꿀 (신뢰도, 밀원부족, 표시기준)
말복이 지나고 나면 저는 매년 같은 걱정을 합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벌통이 다 비슷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열어보면 어떤 통은 벌이 넘칠 듯 빽빽하고, 어떤 통은 벌집을 제대로 지키기도 버거울 만큼 벌이 없습니다. 이 차이를 그냥 두면 가을과 겨울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벌통이 생깁니다. 세력 고르기와 합봉이 왜 지금 시점에 꼭 필요한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양봉을 시작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약군(弱群)이란 한 벌통 안에 일벌 수가 현저히 줄어 정상적인 봉군 활동이 어려운 상태를 뜻합니다. 저도 초반에는 '좀 적으면 어때, 알아서 회복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내버려 두면 도봉(盜蜂)이 시작됩니다.
도봉이란 다른 벌통의 꿀이나 먹이를 훔쳐가는 행위입니다. 벌통 입구를 지킬 벌이 부족하면 이웃 벌통의 벌들이 침입하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몇 마리인 것 같아도 금세 수십, 수백 마리가 몰려들면서 약군의 먹이가 통째로 비워집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어느 날 아침 확인하니 벌통 안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도봉이 시작된 지 이틀도 안 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약군 상태가 계속되면 말벌 공격에도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특히 9월 이후 장수말벌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에는 방어 일벌이 충분하지 않으면 벌통 하나가 며칠 만에 전멸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약군으로 두면 겨울을 나기도 전에 말벌의 집중 공격을 받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이상 분봉이 나기도 합니다. 약군을 그냥 둬서 좋을 게 없다는 것, 이건 몇 번 당하고 나서야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소충(小蟲) 피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충이란 벌통 내부를 갉아먹고 망가뜨리는 해충을 통칭하며, 부채명나방(Galleria mellonella)이 대표적입니다. 부채명나방이란 벌집의 밀랍을 먹으며 자라는 나방의 유충으로, 벌들이 충분히 많은 벌통에서는 벌들이 직접 잡아내거나 쫓아내지만, 약군에서는 그게 안 됩니다. 벌이 지킬 수 있는 벌집의 양과 실제 벌집 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부채명나방 피해가 급격히 커집니다.
약군을 살리는 방법 중 제가 가장 효과를 본 것은 강군(强群)에서 봉개된 소비를 꺼내 약군에 넣어주는 방식입니다. 봉개 소비(封蓋巢脾)란 일벌 또는 수벌의 번데기가 뚜껑으로 밀봉된 채로 들어 있는 벌집판을 말합니다. 이 소비를 약군에 넣어주면 며칠 안에 새 일벌들이 우화(羽化)하면서 약군의 세력이 빠르게 올라옵니다. 조금만 도움을 줘도 힘을 얻어 세력이 강해지는 벌통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방법이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세력 고르기는 약군만을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강군 역시 지나치게 세력이 넘치면 분봉(分蜂) 본능이 자극됩니다. 분봉이란 군집이 둘로 나뉘어 여왕벌과 일부 벌들이 새 터전을 찾아 떠나는 현상입니다. 강군에서 봉개 소비를 빼주면 강군 입장에서도 과밀 상태가 해소되면서 다시 안착하는 계기가 됩니다. 강군과 약군 모두에게 세력 고르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세력 고르기를 할 때 제가 벌통마다 살펴보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숫자만 맞추는 게 세력 고르기가 아닙니다. 벌통 전체의 균형을 보는 작업입니다.
세력 고르기를 해도 회복이 어려운 벌통이 있습니다. 특히 무왕군(無王群), 즉 여왕벌이 없는 봉군이 그렇습니다. 무왕군이란 여왕벌이 사라지거나 산란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의 봉군을 말합니다. 일벌의 수명은 여름철 기준 대략 4~6주로 짧기 때문에, 여왕벌 없이 시간이 흐르면 봉군은 자연스럽게 소멸합니다.
이런 경우 합봉(合蜂)을 고려해야 합니다. 합봉이란 두 봉군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게 벌통 두 개를 그냥 붙여놓는 작업이 아닙니다. 벌들은 자기 봉군의 냄새를 매우 예민하게 감지합니다. 갑자기 낯선 벌들을 섞으면 싸움이 벌어지고 많은 벌이 죽습니다.
제가 쓰는 방법은 신문지 합봉법입니다. 두 벌통 사이에 신문지를 끼워 바로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벌들이 신문지를 서서히 뚫으면서 냄새를 섞은 뒤에 자연스럽게 합쳐지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벌싸움 없이 합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봉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여왕벌과 왕대(王臺) 유무입니다. 왕대란 새 여왕벌이 자라는 특수한 벌방을 뜻합니다. 무왕군처럼 보여도 왕대나 처녀왕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 합봉했다가 여왕벌 두 마리가 싸우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느 군의 여왕벌을 살릴 것인지 먼저 결정하고, 나머지 군의 여왕벌은 제거한 뒤 합봉해야 합니다.
농촌진흥청 양봉 기술 자료에 따르면(출처: 농촌진흥청) 합봉 적기는 꿀벌의 활동이 왕성하지 않은 저녁 무렵이 좋으며, 합봉 후 최소 2~3일은 벌통을 건드리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말복 이후부터 세력 고르기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월동벌(越冬蜂)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월동벌이란 겨울철 혹한 속에서 봉군을 유지하는 장수 일벌들로, 여름벌과 달리 지방 체(fat body)가 발달해 수개월을 버틸 수 있는 벌입니다. 이 월동벌은 대략 8월 말에서 9월 사이에 태어나는 벌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왕벌이 활발하게 산란하고 봉개 소비가 충분한 강군이 있어야 월동벌도 제대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아응애(Varroa destructor)를 잡겠다고 한여름에 여왕벌을 격리, 즉 여왕벌을 산란 불가 상태로 가두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바로아응애란 꿀벌의 번데기와 성충에 기생하는 진드기로 꿀벌 집단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응애를 잡겠다는 목적은 맞지만, 여름 내내 여왕벌 산란이 막히면 8월이 지나도 강군을 만들지 못합니다. 강군이 없으면 약군에 나눠줄 봉개 소비도 없고, 결국 가을이 되어도 세력 고르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분봉을 반복해 벌통 수만 억지로 늘리는 경우도 문제입니다. 벌통 수가 많을수록 정부 보조금 기준에 유리한 구조가 있다 보니, 약군인 채로 수를 늘려두는 농가도 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본 일인데, 그렇게 겨울을 맞이한 벌통들은 이듬해 봄에 열어보면 바로아응애 피해에 허약한 체력까지 겹쳐 벌들이 대부분 사라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벌의 건강보다 통 수를 앞세우면 결국 벌이 사라집니다. 이건 양봉가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꿀벌 봉군 건강에 관한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연구 자료에서도(출처: 유럽식품안전청 EFSA) 봉군 세력 유지와 바로아응애 관리가 월동 성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숫자보다 건강한 봉군이 먼저라는 것, 현장에서도 데이터에서도 같은 결론입니다.
Q. 세력 고르기는 언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기인가요?
A. 말복이 지나고 나서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가 적기입니다. 이 시기에 태어나는 일벌들이 월동벌로 자라기 때문에, 지금 봉개 소비를 약군에 넣어줘야 월동 전까지 세력을 회복할 시간이 생깁니다. 너무 늦으면 우화한 벌들이 월동벌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Q. 합봉할 때 여왕벌을 두 마리 그냥 놔두면 안 되나요?
A. 안 됩니다. 한 봉군 안에 여왕벌이 두 마리 있으면 반드시 싸움이 벌어지고 한 마리가 죽거나, 최악의 경우 두 마리 모두 피해를 입습니다. 합봉 전에 어느 군의 여왕벌을 남길지 먼저 결정하고 나머지 여왕벌을 제거해야 합니다. 왕대도 마찬가지입니다.
Q. 강군에서 봉개 소비를 너무 많이 빼면 강군이 약해지지 않나요?
A. 맞습니다. 그래서 강군의 전체 소비 수와 벌 수를 먼저 파악하고, 벌이 충분히 덮고 남을 만큼만 남긴 뒤 여분의 봉개 소비를 약군에 넣어야 합니다. 무작정 많이 빼면 강군 자체의 방어력과 산란 환경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균형이 핵심입니다.
Q. 무왕군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A. 소비를 꺼내 알(1일령 이내 미수정란)이 있는지 먼저 봅니다. 알이 없고 봉개 유충만 남아 있다면 여왕벌이 사라진 지 며칠 지난 것입니다. 왕대가 만들어져 있다면 처녀왕이 있거나 봉군이 스스로 새 여왕을 키우는 중일 수 있습니다. 섣불리 합봉하기보다 2~3일 더 관찰한 뒤 판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부채명나방 피해를 줄이려면 소비 수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요?
A. 벌이 빽빽하게 덮을 수 있는 소비 수만 넣어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빈 소비, 벌이 없는 소비는 부채명나방 유충이 파고들기 좋은 환경입니다. 약군이라면 소비를 과감하게 줄이고, 벌이 감당할 수 있는 공간만 남기는 것이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결국 말복 이후의 세력 고르기는 월동 준비의 첫 단추입니다. 강군에서 봉개 소비를 나눠 약군을 살리고, 회복이 불가능한 무왕군은 합봉으로 세력을 이어가는 것. 벌통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벌들이 건강하게 가을을 나고 겨울을 버티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목표입니다. 올해도 말복이 지나면 저는 벌통 하나하나를 다시 열어볼 것입니다. 양봉은 매년 같은 계절이 와도 매번 다른 공부를 시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