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벌꿀과 천연벌꿀 (신뢰도, 밀원부족, 표시기준)
밤꽃꿀을 처음 맛본 사람 중에 "이거 상한 거 아닌가요?" 하고 되묻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도 봉장 주변에 밤나무 밭이 있어서 해마다 밤꽃꿀을 뜨긴 했는데, 한동안 팔 엄두를 못 냈습니다. 쓴맛이 너무 강하고 향도 독해서 받아 가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지인이 직접 채취해 가겠다고 찾아오면서 이 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꿀은 무조건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밤꽃꿀을 처음 먹으면 당황하는 거고, 반품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제가 주변에서 꽤 봤습니다. 그런데 이 쓴맛, 사실 밤꽃꿀이 제대로 된 꿀이라는 증거입니다.
밤꿀이 짙은 암갈색을 띠고 묵직한 쓴맛을 내는 핵심 이유는 폴리페놀(Polyphenol)과 키누렌산(Kynurenic acid) 때문입니다. 폴리페놀이란 식물이 자외선이나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항산화 화합물로, 밤꿀에는 아까시꿀보다 최대 4~10배까지 높게 검출됩니다. 여기에 갈산(Gallic acid)과 페룰산(Ferulic acid)이 더해져 흑갈색의 짙은 색깔이 완성됩니다.
키누렌산이란 아미노산 대사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물질로, 혀 표면의 쓴맛 수용체인 T2R과 결합하여 뇌에 강력한 쓴맛 신호를 보냅니다. 여기에 밤나무 토양에서 흡수된 칼륨(K), 마그네슘(Mg), 철분(Fe) 같은 무기질 이온들이 단맛을 눌러버리고 점막을 자극하면서 특유의 쌉쌀한 뒷맛이 완성되는 구조입니다. 제 경험상 이 쓴맛이 강할수록 다른 밀원이 덜 섞인 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재미있는 건, 오래 묵힌 밤꽃꿀은 좀 다릅니다. 최근에 오래된 밤꽃꿀을 먹어봤는데, 쓴맛이 상당히 줄어들고 향도 많이 부드러워져서 처음 맛보는 분들도 거부감 없이 드실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휘발성 성분이 날아가고 풍미가 안정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밤꿀의 항산화 성분에 관한 연구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단일 밀원 벌꿀의 성분 분석 연구에서 밤꿀은 다른 단화꿀 대비 폴리페놀 함량과 항산화 활성이 가장 높은 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솔직히 이건 좀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지인이 밤꽃꿀을 구하러 수소문하던 중 농축장에서 판다는 연락이 와서 같이 달려갔습니다. 향은 분명히 밤꽃향이 났는데, 쓴맛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먹어보고 든 생각은 '이건 야생화꿀이다'였습니다.
이게 왜 생기는 문제냐면, 6월 초중순에는 밤꽃 말고도 헛개나무, 찔레꽃, 늦둥이 아까시꽃이 함께 피거든요. 꿀벌의 채밀 반경은 보통 2~3km에 달합니다. 꿀벌은 그 반경 안에 당도 높은 화밀이 있으면 밀원을 가리지 않고 날아갑니다. 그러니 벌통 안에 밤꽃 화밀만 쌓일 거라는 건 생태학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화분 분석(Pollen Analysis)이란 꿀 속에 섞인 꽃가루를 현미경으로 계측해 밀원의 비율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국내 기준으로는 밤나무 꽃가루가 전체 검출 화분의 45% 이상이면 단일 밤꿀로 유통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절반도 안 되는 밤꽃 성분이 들어 있어도 '밤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시중 밤꿀 중 상당수는 밤꽃 성분이 30% 수준에 그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문제는 밤꽃향 자체가 워낙 강해서 다른 꿀이 섞여 있어도 냄새만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까시꿀보다 드럼당 100만 원 이상 비싸게 거래되다 보니, 밤꽃향만 나면 밤꿀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진짜 밤꽃꿀의 기준은 향보다 쓴맛에 있습니다. 쓴맛 없는 밤꿀은 그냥 밤꽃향 나는 잡화꿀로 보는 게 맞습니다.
탄소동위원소비(δ¹³C)란 꿀 속 탄소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해 인위적인 당 혼입 여부를 확인하는 지표입니다. -23.5‰ 이하면 천연 벌꿀로 인정받습니다. 믿을 수 있는 밤꿀이라면 이 성적서와 화분 분석 데이터를 함께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밀원 순도 관련 규정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벌꿀 표시 기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올해 지인이 봉장에 와서 계상을 통째로 가져갈 때 하는 걸 보니, 위아래 정리 채밀을 꼼꼼하게 먼저 해두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서 '이 사람, 제대로 알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밤꽃꿀 채밀에서 정리 채밀이 빠지면 기존에 남아 있던 아까시꿀이나 잡화꿀이 섞여 쓴맛이 희석됩니다.
밤꽃꿀 시기에 현장에서 주의해야 할 게 또 있습니다. 6월은 사실 벌들한테 먹이가 부족한 시기입니다. 밖에서 화밀을 가져와도 유봉(어린 일벌)들이 먹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날씨 탓도 크고요. 너무 더워지거나 비가 연속으로 내리면 밤꽃이 빨리 지거나 화밀이 씻겨 나가서 수확량이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밤꽃꿀만큼은 벌통 구조를 손봐야 합니다. 제가 지켜보며 익힌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방식으로 수확한 밤꿀은 색이 확연히 검고, 쓴맛과 향이 한층 강하게 올라옵니다. 단순히 채밀량만 추구하는 벌통과는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공소비(Empty Comb)란 꿀이나 알이 없는 빈 벌집 틀을 말하는데, 이 공소비를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밤꽃꿀 순도를 좌우합니다.
Q. 밤꽃꿀이 쓴 게 정상인가요, 변질된 건 아닌가요?
A. 쓴맛은 밤꽃꿀의 정상적인 특성입니다. 키누렌산이 혀의 쓴맛 수용체인 T2R과 결합하고, 다량의 미네랄 이온이 단맛을 억제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오히려 쓴맛이 강할수록 다른 밀원이 덜 섞인 고순도 밤꿀에 가깝습니다. 단, 오래 보관하면 쓴맛이 부드러워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Q. 시중에서 파는 밤꿀은 정말 밤꽃꿀인가요?
A. 향만으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밤꽃향이 강해서 다른 꿀이 섞여 있어도 냄새로는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진짜 밤꽃꿀이라면 쓴맛이 분명히 있어야 하고, 화분 분석 데이터나 탄소동위원소비 성적서를 공개하는 곳의 제품을 고르시는 게 좋습니다.
Q. 밤꽃꿀 채밀 시기는 언제가 좋은가요?
A. 국내 밤나무 개화 시기는 보통 6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입니다. 이 시기에 날씨가 너무 더워지거나 비가 연속으로 내리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듭니다. 개화 2~3일 전에 정리 채밀을 마치고 벌통 구조를 재배치해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Q. 격리판을 쓰면 벌이 약해지지 않나요?
A. 격리판은 여왕벌의 이동 경로를 제한하는 도구입니다. 일벌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서 벌 군세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꽉 찬 먹이장을 함께 배치해 유봉들의 먹이 부족 문제를 해결해 줘야 군세가 유지됩니다.
Q. 밤꽃꿀은 어떻게 먹는 게 좋은가요?
A. 밤꽃꿀은 단맛보다 약용 성분이 강한 꿀입니다. 공복에 소량씩 섭취하거나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쓴맛이 부담스럽다면 오래 숙성된 것을 고르시거나, 처음에는 소량부터 시작하는 게 적응하기 쉽습니다.
밤꽃꿀은 팔기 가장 어려운 꿀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제품을 제대로 설명하면 오히려 단골이 생기는 꿀이기도 합니다. 쓴맛의 이유를 알고 먹는 사람과 모르고 먹는 사람의 반응은 완전히 다릅니다. 밤꽃꿀을 구매하거나 생산하려는 분이라면, 향보다 쓴맛을 먼저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그 쓴맛이 밤꽃꿀의 가장 솔직한 성적표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양봉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섭취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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