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벌꿀과 천연벌꿀 (신뢰도, 밀원부족, 표시기준)
밀개(Capping)가 다 덮인 소비만 있으면 좋은 꿀이 나온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채밀을 직접 해보면서 느낀 건, 밀개보다 그 이후의 과정, 즉 어떻게 뜯어내느냐가 수율과 품질을 갈라놓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은 채밀 현장에서 제가 직접 부딪혔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과 제가 생각하는 개선점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채밀 현장에서 오래 자리를 잡아온 방식은 채밀도(밀개 제거용 칼)를 끓는 물에 담가 뜨겁게 달군 뒤 밀개를 저미는 것입니다. 밀랍(Beeswax)은 융점이 약 62~65°C인 지질성 물질입니다. 지질성 물질이란 기름처럼 열에 녹아내리는 성질을 가진 것을 말하는데, 이 때문에 칼날이 차가우면 밀랍 잔여물이 칼에 엉겨 붙어 작업 속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 부분만큼은 틀린 말이 없습니다. 저도 처음엔 미지근한 칼로 시작했다가 서너 장 지나지 않아 칼날이 밀랍 덩어리로 뒤덮여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칼을 80°C 이상의 물에 담가 쓸 때 칼 표면에 수분이 묻어나온다는 점입니다. 벌꿀의 수분 함량(Moisture Content)은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수분 함량이란 꿀 전체 무게 대비 수분이 차지하는 비율로, 이 수치가 21%를 넘으면 내삼투성 효모(Osmophilic Yeast)가 활성화되어 발효가 시작됩니다. 내삼투성 효모란 당도가 높은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효모를 가리키는데, 이 녀석이 깨어나면 꿀은 시큼한 냄새와 함께 거품이 올라오고 상품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뜨거운 칼에 묻은 물방울이 조금씩 꿀에 섞인다면, 수분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현장에서 이미 품질이 흔들리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온수 가열 공법을 무조건 버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소비 틀 가장자리에 붙은 여분의 밀랍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차가운 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딜레마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매번 칼을 들고 있는데, 그래서 더 근본적인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의 채밀칼은 외국 제품에 비해 크기가 유난히 크다는 점도 신경 쓰입니다. 제가 외국 채밀 현장 자료를 찾아보면서 느낀 건데, 소비 틀 규격에 맞게 설계된 작고 정밀한 칼을 쓰면 밀개를 얇게 저미는 작업이 훨씬 수월하고 꿀 손실도 줄어듭니다. 얇게 저밀수록 밀개에 남는 꿀이 적어져 수율이 올라가는 건 직접 해보면 바로 체감이 됩니다.
채밀 며칠 전부터 칼을 잘 갈아두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무딘 날로 밀개를 긁으면 밀랍이 깔끔하게 잘리지 않고 뜯겨 나가는데, 이렇게 되면 소방(Honey Cell) 입구, 즉 꿀이 흘러나오는 통로가 짓이겨져 막히게 됩니다. 소방이란 벌집을 이루는 육각형 방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구조가 훼손되면 채밀기에서 원심력을 가해도 꿀이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잘 연마된 칼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수율 직결 문제입니다.
그런데 칼 관리만큼이나 현장 채밀에서 신경 쓰이는 게 따로 있습니다. 바로 벌들입니다. 아침 일찍 시작해도 9시만 넘으면 벌들이 왕왕거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시간대부터는 탈봉(벌 쓸어내기), 즉 소비에서 벌들을 털어내는 작업이 확연히 위험해집니다. 외역벌들이 귀소 비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벌통 주변 예민도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꿀에 빠지거나 채밀기 안으로 따라 들어가 죽는 벌들이 속출합니다. 봉군 피해가 누적되면 다음 유밀기(꿀이 많이 나오는 개화 시기) 생산성도 함께 떨어집니다.
야외 현장 채밀의 또 다른 손실은 밀개된 밀랍 처리에서 나옵니다. 칼로 저며낸 밀개 밀랍에는 꿀이 상당량 붙어 있는데, 실외 작업 환경에서는 흙먼지, 벌 사체, 각종 이물질이 붙기 쉬워 이 꿀을 별도로 받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아까운 꿀을 그냥 버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버리는 양이 얼마 되지 않겠거니 했는데, 막상 계산해보면 꽤 상당한 손실입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출처: 농촌진흥청) 벌꿀의 수분 함량은 20% 이하로 관리해야 상품성이 유지되며, 채밀 전 굴절 수분계를 이용한 실측이 권장됩니다. 굴절 수분계(Refractometer)란 빛의 굴절 원리를 이용해 꿀 한 방울만으로 수분 비율을 빠르게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현장 채밀에서 아무리 서두르더라도 이 단계만큼은 건너뛰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채밀은 벌통 옆에서 바로 하는 현장 방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저는 이 부분에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꿀이 든 소비 틀을 저온 저장고에 보관했다가 실내에서 채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공상이 아닌 이유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물론 소비 틀을 저장고까지 옮기는 운반 비용과 냉장 공간 확보 문제가 현실적인 장벽입니다. 당장 모든 농가가 적용하기 어렵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품질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소비자의 눈도 까다로워지는 시대에, 현장 채밀이 '가장 편한 방법'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이어가는 게 맞는지는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양봉산물 품질 가이드에 따르면(출처: 국립농업과학원) 채밀 환경의 위생 관리와 온도 조건은 최종 벌꿀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제 경험상 이건 그냥 원칙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하는 차이입니다.
Q. 밀개가 다 덮이지 않은 소비도 채밀해도 될까요?
A. 일반적으로 소방의 60~70% 이상 밀개가 완료된 소비를 채밀하라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기준을 가능한 한 엄격하게 지키는 편입니다. 밀개가 덜 된 소비는 수분 함량이 21%를 넘는 경우가 많고, 이 상태로 채밀하면 내삼투성 효모 발효가 시작돼 정상적인 완숙꿀과 섞였을 때 전체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굴절 수분계로 실측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Q. 채밀칼은 반드시 끓는 물에 담가서 써야 하나요?
A. 뜨거운 칼이 밀개 제거를 빠르게 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칼 표면의 수분이 꿀에 섞일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칼을 며칠 전부터 잘 갈아두고 소비에 맞는 적절한 크기의 칼을 쓰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큽니다. 실내 저온 환경에서 채밀할 경우에는 굳이 칼을 달굴 필요 없이 두껍게 저며도 잘 잘립니다.
Q. 저녁에 채밀하면 왜 안 되나요?
A. 저녁이나 야간에 채밀 작업을 하면 탈봉 과정에서 소비를 떠난 벌들이 어둠 속에서 자기 벌통을 찾지 못해 땅에서 저체온증으로 죽는 낙봉 현상이 대량 발생합니다. 또한 채밀 과정에서 누출된 꿀 냄새가 인근 벌통을 자극해 도봉이 일어나면 봉장 전체가 혼란에 빠집니다. 가능하면 이른 아침에 시작해 오전 9시 이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Q. 밀개 밀랍을 버리지 않고 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현장 야외 채밀에서는 이물질 문제로 밀개에 붙은 꿀을 별도로 받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내에서 청결하게 채밀하면 밀개 밀랍을 채반 위에 올려 그 아래로 꿀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받아낼 수 있습니다. 수분 유입 없이 꿀을 회수하는 방법으로, 저는 이 방식이 품질과 수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향이라고 봅니다.
Q. 채밀기에서 소비가 파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원심 채밀기(Honey Extractor)에서 처음부터 고속으로 돌리면 벌꿀의 무게와 강한 원심력이 합쳐져 벌집 벽면이 찢어지거나 소비 자체가 무너집니다. 원심 채밀기란 회전 원심력으로 소방 안의 꿀을 바깥으로 분리해내는 기계입니다. 저속에서 시작해 소비 양면의 꿀을 각각 30% 정도 빼낸 뒤 소비를 뒤집어 중고속으로 마무리하는 단계별 방식이 소비 파손을 막는 기본 원칙입니다.
채밀은 꿀벌이 긴 시간을 들여 만든 결과물을 인간이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공정입니다. 그 마지막 단계에서 방법 하나 때문에 수율이 줄고 품질이 흔들리고 벌들이 죽는다면, 분명히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장 실내 채밀로 전환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도, 채밀칼 관리와 시간대 선택, 수분 측정 같은 기본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결과가 달라집니다. 올해 채밀을 앞두고 계신 분이라면 지금 쓰는 방법을 한 번쯤 다시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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